목록여유롭고 즐겁게/시 모음 (12)
푸른 골짜기
수선화에게 - 정호승 울지마라 외로우니까 사람이다 살아간다는 것은 외로움을 견디는 일이다 공연히 오지 않는 전화를 기다리지 마라 눈이 오면 눈길을 걸어가고 비가 오면 빗길을 걸어가라 갈대 숲에서 가슴 검은 도요새도 너를 보고 있다 가끔은 하느님도 외로워서 눈물을 흘리신다 ..
윤사월 / 박목월 송화(松花)가루 날리는 외딴 봉우리 윤사월 해 길다 꾀꼬리 울면 산지기 외딴 집 눈 먼 처녀사 문설주에 귀 대고 엿듣고 있다
고독 라이너 마리아 릴케 고독은 비와 같다 고독은 바다에서 저녁을 향해 오른다. 고독은 아득히 외딴 평원에서 언제나 고독을 품고 있는 하늘로 향한다 그러나 비로소 하늘에서 도시 위로 떨어져 내린다. 동틀 녘에 고독은 비가 되어 내린다. 모든 골목들이 아침을 향할 때, 아무것도 찾..
귀천 / 천상병 나 하늘로 돌아가리라. 새벽빛 와 닿으면 스러지는 이슬 더불어 손에 손을 잡고 나 하늘로 돌아가리라. 노을빛 함께 단 둘이서 기슭에서 놀다가 구름 손짓하면은 나 하늘로 돌아가리라. 아름다운 이 세상 소풍 끝내는 날 가서 아름다웠더라고 말하리라.
고향 / 정지용 고향에 고향에 돌아와도 그리던 고향은 아니러뇨. 산꿩이 알을 품고 뻐꾸기 제철에 울건만, 마음은 제 고향 지니지 않고 머언 항구(港口)로 떠도는 구름. 오늘도 뫼끝에 홀로 오르니 흰 점꽃이 인정스레 웃고, 어린 시절에 불던 풀피리 소리 아니나고 메마른 입술에 쓰디쓰..
해 / 박 두진 해야 솟아라, 해야 솟아라, 말갛게 씻은 얼굴 고운 해야 솟아라. 산 넘어 산 넘어서 어둠을 살라 먹고, 산 넘어 밤새도록 어둠을 살라 먹고, 이글이글 애띤 얼굴 고운 해야 솟아라. 달밤이 싫어, 달밤이 싫어, 눈물 같은 골짜기에 달밤이 싫어. 아무도 없는 뜰에 달밤이 나는 싫..
어머니 / 정호승 호롱불 켜놓고 밤새워 콩나물 다듬으시던 어머니 날 새기가 무섭게 콩나물다라이 이고 나가 온양시장 모퉁이에서 밤이 늦도록 콩나물 파시다가 할머니 된 어머니 그 어머니 관도 없이 흙 속에 묻히셨다 손끝마다 눈을 떠서 아프던 까치눈도 고요히 눈을 감고 잠이 드셨..
청포도 / 이육사 내 고장 칠월은 청포도가 익어 가는 시절 이 마을 전설이 주저리 주저리 열리고 먼 데 하늘이 꿈꾸며 알알이 들어와 박혀 하늘 밑 푸른 바다가 가슴을 열고 흰 돛 단 배가 곱게 밀려서 오면 내가 바라는 손님은 고달픈 몸으로 청포를 입고 찾아 온다고 했으니 내 그를 맞아..
무지개 / 윌리암 워즈워스 저 하늘 무지개를 보면 내 가슴은 뛰노라 나 어린 시절에 그러했고 어른인 지금도 그러하고 늙어서도 그러하리 그렇지 않다면 차라리 죽는게 나으리! 아이는 어른의 아버지 내 하루 하루가 자연의 숭고함 속에 있기를
완화삼(玩花衫) / 조지훈(趙芝薰) 차운 산 바위 위에 하늘은 멀어 산새가 구슬피 울음 운다. 구름 흘러가는 물길은 칠백 리. 나그네 긴 소매 꽃잎에 젖어 술 익는 강마을의 저녁 노을이여. 이 밤 자면 저 마을에 꽃은 지리라. 다정하고 한 많음도 병인 양하여 달빛 아래 고요히 흔들리며 가..
나그네 / 박목월 강(江)나루 건너서 밀밭 길을 구름에 달 가듯이 가는 나그네 길은 외줄기 남도 삼백리 술 익는 마을마다 타는 저녁놀 구름에 달 가듯이 가는 나그네